또 다른 이야기를 듣기 위해

희진 (프로그램 참여자, 무아레의 오랜 단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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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정유령

[공간의 흔적을 지닌 사람들] 첫 번째 인터뷰

희진
(프로그램 참여자, 무아레의 오랜 단골) 인터뷰

무아레 서점을 가면 높은 확률로 희진을 마주칠 수 있다. 이번 <도시를 ‘걷기’로 감각하기>에서도 희진을 볼 수 있었다. 무아레의 오랜 단골이며, 서점에서 파라텍스트 클럽이라는 모임을 이끌기도 한다. 내가 지켜본 희진은, 무아레 서점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매번 말로 표현하는 사람. 프로그램에서는 그녀의 말로 함께 참여한 이야기가 깊어지고, 분위기가 활기차지는 광경을 자주 목격했다. 또, 그녀는 말로 자신의 생각을 잘 전달해서 사고방식이 확립된 것처럼 보이지만, 대화를 통해 생각이 수정되고 확장된다는 느낌을 받곤 했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어떤 화학작용이 일어나는 걸까? 그런 희진에게 무아레란 공간에 대해서, 그리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경험에 대해 질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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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정유령:

장한평을 같이 돌아다닌다고 하는 게 저한테는 ‘모험’처럼 느껴졌거든요. 이렇게 오늘 프로그램을 하나의 단어로 정의를 한다면 어떤 게 떠오르세요?

희진유령:

저는 산책. 동네 산책처럼 느껴졌어요. 왜냐하면 전 이렇게 뭉쳐서 다니는걸 많이 하거든요. 그래서 그런가, 저희 동네에는 배봉산이 있어요. 인근 학부모님들이 이제 친구죠. 저한테는 동네 친구들하고 같이 한 5명이서 배봉산을 본다던가, 동네 돌아다니고 그런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동네 산책하는 것처럼 저에게 다가왔어요.

민정유령:

그럼 산책이라고 한다는 게 조금 더 친해진 느낌일까요? 저한테는 낯선 도시를 산책한다고 하는 게, ‘낯선’과 ‘산책’이 좀 이질적으로 느껴져서요

희진유령:

여행 가서도 산책하지 않나요?

민정유령:

아, 그렇네요!

희진유령:

그렇죠. 여행 가서도 산책하고 그러니까요. 산책이라고 제가 말하는 의도는 좀 더 무목적성을 강조한다고 할까요? 그러니까 만약에 모험이다, 아니면 뭔가를 발견하러 간다 이러면 조금 더 목적성이 있으니까요.

민정유령:

맞아요. 맞아요, 맞아.

희진유령:

맞아. 근데 이제 사실 저의 마음가짐은 그랬거든요. 우리가 이렇게 둘러본다. 우리가 다같이 그냥, 이렇게 슬렁슬렁 마실 간다. 동네 마실. 그런 어떤 가벼운 느낌으로 참여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산책하다 보면 되게 새로운 걸 많이 보게 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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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정유령:

아까 새롭게 발견할 수 있다고 했는데, 이 프로그램에서도 혹시 새롭게 발견한 게 있었어요?

희진유령:

완전 많죠. 왜냐하면 뭔가 새로운 동네니까. 그러니까 장한평이 새롭다기보다는 저한테는 장한평의 처음 보는 모습이었고 제일 인상 깊었던 거. 얘기해도 되나요? 아까 저기 쓴 것(후기 나누는 시간에 포스트잇으로 적은 이야기) 중에 하나인데 아까 거기에(장안평 중고차 매매 시장 건물 안) 금고 2개가 딱 있었거든요. 제 뇌피셜인데 이건 사장님 의자인 것 같고.

장안평 중고차 매매 시장
민정유령:

약간 그런 것 같아요. 그쵸.

희진유령:

그래서 저는 이게 되게 상징적으로 느껴졌어요. 말하자면 지금 중고차 시장은 플랫폼으로 많이 넘어갔잖아요. 다 오프라인이었던 시절에는 이 금고에 현찰이 다 꽉꽉 쌓여 있었겠지. 그리고 여기 보면, 진짜 먼지가 쌓여서 끈적하게 내려앉은 느낌 뭔지 아세요? 먼지가 원래라면 풀풀 날리는 거잖아요. 근데 그게 진짜로 막 쌓이고 계절을 거치면서 끈적하게 내려앉은, 방치된 그 느낌 있잖아요. 그래서 지금의 중고차 시장의 산업적인 현실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이런게 중고차 시장만이겠어요? 기존의 오프라인 중심의 그런 공간들이 많이 온라인으로 옮겨가면서 서울의 어떤 흔적이자, 지금의 어떤 현실이자 이런 걸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했어요. 과거의 영광.

민정유령:

과거와의 대비가 좀 와닿았던 것 같아요.

희진유령:

사실은 금고가 여기 있으면 안 되잖아요. 그러니까 있어서는 안되는 장소에 어떤 물건이 나와있을 때 그 느낌이 되게 생경하잖아요.

민정유령:

말이 너무 재밌다.

희진유령:

거기서 오는 그게 있어요. 갭이 주는 모먼트. 옆에 장기판도 있었어요. 너무 오래 누가 손도 안 댄 거야. 그래서 이 채로 박제된 거예요. 말하자면 아슬아슬하게 어디 치워두지도 않고 방치돼서 보존되는 거예요. 말 그대로 방치돼서 보존된 현장을 우리가 우연하게 본 거지.

장안평 중고차 매매 시장
민정유령:

어디 정리해두지도 않고.

희진유령:

이거 그냥 한 번만 툭 쳐도 떨어졌을 것 같아.

민정유령:

맞아 맞아 맞아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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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정유령:

이건 오늘 참여한 프로그램 <도시를 ‘걷기’로 감각하기>에 관한 내용이기도 하고, 무아레에서 하는 다른 프로그램도 포함해서 하는 이야기인데, 혼자 알게 되는 것하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것하고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희진유령:

어, 차이가 엄청 크죠. 사고방식이 수정된다고 하는게 다른 점이라고 생각해요. 생각의 방법이 다르다고 하나, 그러니까 말하자면 혼자서 책을 읽고, 생각하고, 기록하는 것은 완전히 내 안으로 들어가는 경험이에요. 책을 읽을 때, 그걸 혼자 한다는 건 당연히 내 경험과 결합시켜서 안으로 뭔가 쌓아가는 작업이죠. 그러면 여기서 하는 프로그램들은 사실, 본질이 들으러 가는 거죠. 완전히 나를 열어놓고 듣겠다는 마음으로 항상 참여하고 있어요.

민정유령:

이게 또 사람마다 말하고 싶어서 참여하는 사람이 있고, 듣고 싶어서 참여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아요.

희진유령:

근데, 너무 죄송하게도 말을 많이 하는데, 항상 마음가짐은 그런 마음가짐을 가지고 참여하고, 그럼으로써 얻는 게 너무 많아요. 또 이 무아레라는 공간에 오시는 분들이 어떻게 보면 저의 준거 집단과는 완전히 거리가 있는 분들이 많이 오시기 때문에 그것도 흥미롭고 그 가치가 사실은 더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민정유령:

자신의 바운더리 바깥의 사람들인거죠?

희진유령:

그러니까 저의 어떤 반경을, 공간의 반경을 넓히는 역할을 하는거죠. 저도 되게 아웃고잉한 사람이다 보니까 제 준거 집단 안에서의 커뮤니티도 있고 되게 단단하거든요. 그 안에서 얘기할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이야기들과, 완전히 또 다른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다고 하나. 그래서 항상 듣는다는 마음으로 참여하니까 얻는 게 완전히 다른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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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예유령:

무아레는 함께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장이잖아요, 그렇다면 무아레의 역할 같은 게 있을까요? 이야기를 나눌 때 랜덤으로 사람을 만나는게 아니라, 무아레가 필터역할을 해서 사람을 만나니까 어느 정도 이 사람들이 너무 외지인을 아닐거라는 얘기를 했었잖아요. 무아레가 가진 역할은 그런게 될 수도 있고, 아니면 무아레가 주는 이 도시 속에서의 안정감. ‘여기에 나의 방공호 같은 게 있어’ 그런 역할이 될 수도 있고, 사람마다 다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희진유령:

그럼 이렇게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무아레의 역할은 ‘광장’의 느낌인거죠. 광장 같다고 생각을 해요. 그러니까 광장이라는 건 허허벌판은 아닌 거잖아요. 어쨌든 가능성을 품고 있고, 누구든 와서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는 그 느낌이 저는 너무 좋거든요. 그러니까 더 자유롭게요. 저도 여기서 북클럽 꾸린 것처럼 자유롭게 꾸릴 수 있고 그런 것들을 품이 넓게 수용해줄 수 있는 공간으로 다가와요. 그리고 또 열려 있긴 하지만 자기의 색깔이 있거든요.

민정유령:

지금 무아레라는 공간의 역할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는데, 서점지기의 역할도 있을까요?

희진유령:

저는 두 분 진짜 리스펙, 너무 존경해요. 두 분에 대한 개인적인 존경심도 있지만 어떤 공간을 지키는 이들에 대한 존경심이 항상 깔려 있거든요. 그래서 저는 이분들이 아니더라도 동네 카페 사장님도 존경해요. 저는 전직도 매장 일을 했고, 현장 일을 오래 했기 때문에, 오프라인 공간을 지킨다는 거에 대한 어떤 책임감이라고 할까, 그런 애씀. 우리가 보이지 않는 공력들이 많다는 걸 알고있기 때문에 존경심이 되게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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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정유령:

무아레가 항상 지금처럼 여기에 이런 방식으로 있다는 보장은 없잖아요. 만약에 이사를 간다고 할 때, 이것만은 꼭 가져갔으면 좋겠다, 하는 게 있으세요?

희진유령:

당연히 첫 번째는 지기님들인 것 같고. 왜냐하면 어쨌든 사람이 공간을 채운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근데 이제 그들을 제외한다고 하면, 이제 맛있는 커피. 왜냐하면 책이랑 뗄레야 뗄 수 없는 게 사실 저는 커피라고 생각해요. 저한테는 어떻게 보면 같은 카테고리 안에 있다고 봐도 무관할 정도로 저는 커피 마시면서 책 보고 하니까. 그 가치도 저한테는 되게 커요. 1층 사장님이 커피에 진심이셔서 맛있는 커피를 올 때마다 먹을 수 있다는 건 정말 큰 기쁨이죠. 일상의 기쁨이죠. 그래서 금상첨화라는 생각이 들어요. 맛있는 커피와 함께하는 공간이면 최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