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릿속 장한평을 세공(細工)하기
[건축을 함께 이야기하는 경험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① 도시를 ‘걷기’로 감각하기
민정유령
[건축을 함께 이야기하는 경험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무아레 서점에서 진행하는 “도시를 어떻게 감각할 수 있을까?” 프로그램을 통해 도시를 ‘걷고’, ‘수집하고’, ‘관찰하고’, 그곳에서 ‘길을 찾아’봅니다. 이렇게 물리적 공간에서 건축을 함께 경험하고 이야기합니다. 각자의 렌즈를 투과한 도시는 필연적으로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서로 다른 이야기들이 공동의 장에 모이면서 우리는 어떤 순간을 만들어내고 있을까요?
장한평에 위치한 무아레 서점에 다닌 지 3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어요. 장한평역 3번 출구에 나오면 마주치게 되는 광경은 제 집 주변과는 사뭇 다릅니다. 저는 아파트가 있는 주거단지에 살거든요. 이에 비해 장한평역 근처는 아파트보다는 중저층 건물이 자주 보이고, 벽돌이나 타일로 된 외관을 가진 건물도 많아요. 또 가족 단위의 사람들보다는 어르신들이 많죠. 생경한 풍경이 매우 낯설었고 마주치는 광경들이 조금 불안하게 느껴졌던 것 같아요. 그럼에도 목적지가 무아레 서점이었고 제겐 목적을 달성하는 일이 중요했기 때문에 장한평이란 동네는 계속 낯설게 두었는지도 모르겠어요. <도시를 어떻게 감각할 수 있을까?> 시리즈의 첫 번째 시간인 <도시를 ‘걷기’로 감각하기>에 참여하면서는 “내가 이제는 장한평이란 동네랑 친해질 수 있을까?”라는 궁금증이 생겼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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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일 아침은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고, 각자의 우산을 쓰고 무리를 지어 서점 지기를 따라 걷기 시작했어요. 장안빌딩-장안평 중고차 매매단지-중랑물재생센터-공업사 거리를 함께 걸었습니다. 장안평 중고차 매매단지에서 한 분은 “무아레 서점의 프로그램이 아니었다면 이런 곳에도 안 왔을 것 같은데 곳곳의 장소들을 찾아다니는 경험이 재미있다”라고 말씀하셨어요. 원래 가지고 있던 관심의 바깥에 있기 때문에 이런 흥미로운 경험을 혼자서도 쉽게 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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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차 매매단지의 지하로 내려갔는데 지하는 마치 던전 같았어요. 계단으로 내려가니 벽면에는 타이어가 부딪힌 흔적들이 남아 있었죠. 빈 공간이 많았어요. 복도에 놓인 의자에는 먼지가 수북이 쌓여 있었고요. 마치 시간이 멈춘 장소를 여행하는 기분이었어요. 중고차 매매단지를 나와서 후에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 타이어의 흔적들은 지금도 만들어지고 있단 걸 알았어요. 그러니까 지금도 작동되고 있는 장소라는 거죠. 우리가 함께 바라본 중고차가 한복판에 가득히 주차된 광경, 지하의 다방과 음식점 모두 현재의 시간에서 사람들로 채워진다는 점이 신기했어요.
장한평을 함께 걷는다는 건, 마치 모험하는 기분이 들었는데, 모험이란 말은 위험이 있다는 말이잖아요. 중고차 매매단지도 그런 위험을 느낄 수 있는 요소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1층에서 기다리고 계셨던 두 분이 있는데 사람들이 그분들에게 다가가서 호객행위를 했다고 해요. 혼자라면 그 흥미로운 곳에 갈 수 있었을까요? 저는 아닐 것 같아요. 함께 걷는 건 용기가 생기는 일이고, 이런 흥미로운 경험도 가능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함께 걸으며 같은 시공간을 공유했어요. 물재생센터에서는 함께 개구리와 맹꽁이 소리를 들었지요. 하수 처리되는 냄새를 맡기도 했고요. 비가 추적추적 오고 음산한 그 분위기가 마치 현실과 조금 동떨어진 판타지 같았고, 그 안에 우리는 함께 있었어요. 흥미로웠던 점은 같은 풍경을 공유했음에도 무아레 서점에서 감상을 나눌 때 서로 다른 생각을 했다는 점이에요. 함께 걷는 것만으로는 알 수 없었던 장한평이 있었어요.
참석자1
완전히 안 가본 곳이어서 새로웠어요. 본능적으로 쾌적한 공간을 찾아다니는데 일상에서는 일부러가 아니면 안 가봤을 공간에 가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중고차 시장도 그렇고 물재생센터도 그렇고 어떻게 보면 물밑에서, 현장에서 일하시는 분들이잖아요. 거기서 실제로 일하시는 분들이 어떤가 싶었어요.
참석자2
공업사 거리 음식점 앞에 자동차 정비 기구 같은데 주차금지 꼬깔콘 대신에 놓여있더라고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물품에 따라 저희가 익숙하게 봤던 것들이 대체되는 게 너무 귀여웠어요. 그리고 중고차 시장 가게가 얼마나 오래됐는지 볼 수 있는 게, 에어컨 실외기가 LG가 아니라 골드스타라고 적혀있더라고요. 또 어떤 가게는 교회에서 갖고 온 의자 같은 게 앞에 놓여있고, 공간이 이상하게 조합되는 게 특이한 지점이었어요.
참석자3
장한평이라고 하는 것이 과거에는 말이랑 관련돼 있다고 했었는데 자동차로 바뀐 게 이동 수단에 관련되어 있는 지역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재밌었던 포인트였던 것 같아요. 중고차 시장이 지하도시 같았던 것도 인상적이었고, 공업사 거리에 뭔가 쌓여 있는 부품들이 버려질지 쓰일지 그것도 고민하게 되는 지점이 있었어요.
참석자4
재활용 플라자 앞에서 버려진 깡통 같은 것들을 일렬로 엮어서 ‘돌려보세요’,같은 곳이 있더라고요. 그런데 그게 많이 안 돌렸나 봐요. 풀들이 막 자라다가 그 사이랑 엮어져서 돌릴 수 없을 것처럼 되어 버렸는데 그 모습이 꽤 자연스럽고 풀숲에서 포근하게 감싸진 느낌이 들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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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도 장한평에 스포츠 슈즈를 사러 왔던 분, 중고차 매매시장이 과거에 어떤 공간이었을지 상상해 보는 분, 중고차 시장에서 봤던 바퀴에 대한 상상을 하신 분들이 계셨어요. 각자 어떤 광경들에 주목했는지 눈에 걸린 사소한 포인트를 알게 되는 과정이었죠. 한 사람의 렌즈를 통해서 장한평이 비치고, 그런 각자의 렌즈가 장한평을 다시 바라보게 되는 순간을 만들었던 것 같아요. 장한평의 풍경은 익숙하지만, 부연 안개가 낀 느낌이었어요. 이렇게 함께 이야기함으로써 안개가 걷히고 머릿속의 장한평을 세공할 수 있었어요. 장한평에 대해 자세하고 많은 풍경을 간직하게 됨으로써 풍경만 익숙해진 게 아니라 그 정서에도 익숙해졌답니다. 함께 걷고 이야기를 나누며, 이제는 장한평이란 공간에 나를 두어도 조금 더 안전할 것 같은 마음이 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