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감각의 실마리로 푸는 도시라는 실타래

[건축을 함께 이야기하는 경험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② 도시를 ‘수집’으로 감각하기

정예유령

인간은 도시를 만들고, 도시는 다시 그 안에서 인간을 길러낸다. 우리는 대개 집을 중심으로 특정 목적지를 오가거나, 텍스트나 이미지를 통해 도시를 간접적으로 경험하곤 한다. 이렇듯 일상적인 공간 경험은 오랜 시간 반복되면서 우리 내면에 익숙한 감각으로 굳어진다. 그 결과, 도시가 삶의 일부로 서서히 스며드는 그 찰나의 순간들을 우리는 미처 깨닫지 못한 채 무심히 지나치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미미하고 희미한 경험들을 통해 어떻게 도시를 감각할 수 있을까?

<수집, 도시와 관계를 맺는 방법론> 지난 7월 4일, 무아레 서점에서 진행된 <도시를 어떻게 감각할 수 있을까?> 시리즈의 두 번째 시간에서 ‘서울수집’ 이경민 작가의 <도시를 ‘수집’으로 감각하기> 강연을 들을 수 있었다. 작가는 지난 10년 동안 ‘서울수집’ 계정을 운영하며, 수집이 단순히 ‘물건을 모으는 행위’를 넘어 도시를 바라보고 해석하는 하나의 확장된 방법론이 될 수 있음을 제안했다.

강연 사진
강연 사진

도시에 살아가면서 우리는 물리적 공간과 개인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온몸으로 체화한다. 이경민 작가는 이 감각의 출발점으로 ‘질문’을 꼽았다. 단순히 연결되어 있다는 상태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연결되면 어떻게 되고 그것은 어떤 성질을 가지는가?”라며 한 단계 더 깊은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작가는 이 성질을 ‘관계성’이라 인식했다. 그리고 건축 종사자, 기록가, 재개발 활동가 등 장소를 다루는 이들을 인터뷰하며, 그들이 현재의 길을 선택하기까지 과거의 장소나 공간 경험이 삶에 얼마나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는지 발견해 나갔다.

개인의 삶을 도시와 지역에 얽힌 질문으로 전환하면서, 작가는 개인 프로젝트인 “도.공.영.탐(도시, 공간, 장소 경험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력 탐구)”을 통해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 속에서 물리적 공간이 어떤 정서적 영향을 미쳤는지 그 생생한 사례를 수집하고 있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실마리를 찾는 일은 결국 나 자신을 먼저 둘러보는 일과 같다. 나의 가치관과 취향, 취미와 활동, 나아가 동네와 집을 선택하는 기준까지 모두 그 기억 속에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강연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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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나의 무형적 경험을 포착하는 일> 그간 개인의 서사는 공적인 논의에서 쉽게 배제되곤 했다. 하지만 인간이 짓고 만든 도시는 거꾸로 개인의 내면을 형성하고, 그렇게 형성된 개인은 다시 도시를 인식하는 주체가 된다. 이러한 순환 속에서 피어나는 감각은 특정 공간에 존재했다는 사실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인간의 신체적 지각과 정신적 사유가 동시에 발현되는 복합적인 상호작용인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도시학자 이-푸 투안(Yi-Fu Tuan)의 통찰은 깊은 공명을 일으킨다. 그는 저서 《장소와 공간》에서 인간을 ‘공간을 감각하고 경험하여, 자신만의 의미가 담긴 장소로 변형시키는 존재’라고 정의한다.(이-푸 투안, 2020) 우리는 무심히 지나쳤던 것들을 자세히 들여다봄으로써, 그것들이 지닌 저마다의 고유한 가치를 발견하곤 한다. 이처럼 사람과 공간을 입체적이고 특별한 존재로 알아채는 깊은 시선은 오직 인간만이 가진 성숙한 능력이다.

‘감각은 사고에 의해 빠르게 특별한 종류의 경험으로 치환한다.’(이-푸 투안,2020,p.162) 장소를 감각하는 데에는 특정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사물이 될 수도 있고, 거창한 관념이 될 수도, 사소한 사건이 될 수도 있고, 머무름의 시간 혹은 특별히 드러나지 않는 친숙한 일상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경험을 표현하는 것도, 포착하는 것도 결코 쉽지 않다. 눈에 보이는 사실과 사건을 건조하게 나열하기는 쉬워도, 장소가 지닌 고유한 성질을 포착하는 일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경민 작가가 진행한 인터뷰 내용을 발췌해 보았다.

사건의 사실적 설명: 1980-90년대 대학가는 군사정독 타도, 노동자 권익 보장 등을 외치는 학생운동이 일상화된 공간이었다.

개인의 감각: 냄새로 기억하는 그때 그 순간, 최루탄 연기. “1980년대 후반 1990년대 쯤, 어느 날 눈이 되게 따가운 거예요. 눈이 따갑다고 하니까 부모님이 말씀하시길 ‘근처에서 데모해서 최루탄 터뜨렸나 보다.’라고 말씀해주시더라고요...주변에 대학가(한국외대, 경희대, 카이스트 서울캠퍼스 등)도 있고 시위를 많이 해서 경찰들이 최루탄을 쏘니까 많이 날렸다고 하시는데 그런 이야기가 멀리 있는 게 아닌 가까이 있는 이야기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매운 걸 맡았던 기억이 아직도 나요. 그 감각을 일상에서 느낄 수 없는 감각이니까.”

인터뷰 발췌

공간과 역사적 사실은 사진과 기록물 등 영구적인 보존물로 남길 수 있지만, 그 장소가 주었던 개인의 감각까지 완벽하게 포착해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기에 사람들이 공간과 장소를 어떻게 느끼는지 이해하고, 경험의 다양한 형태를 수집하여 장소를 복잡한 감각의 이미지로 해석하려는 이경민 작가의 작업은 더없이 소중하다.

<사소한 감각의 실마리를 따라 도시의 생태계 발견하기> 비록 찰나일지라도 나를 잠시 멈춰 서게 했던 그 순간들과 감각들을 가만히 돌아보게 된다. 함께했던 사람들, 그 감각에서 비롯된 미묘한 감정들, 그리고 나의 생각과 반응들을 말이다.

돌이켜보면 <무아레 장한평을 ‘걷기’로 감각하기> 프로그램에서 함께 걷던 희진 님이 ‘이 근처는 이상하게 물기가 많은 게 느껴져요’라고 무심코 뱉었던 말이 실제로 장한평 근처 복개천 지형을 이해하는 단서가 될 수도 있고, 장한평 근처 밥집과 카페를 점령한 동호회의 왁자지껄한 소음과 그에 대한 내 신경질적인 반응이 장한평 일대의 스포츠 댄스 문화를 이해하는 단서가 될 수도 있으며, 다 함께 우산을 쓰고 걸으며 물재생센터에서 들었던 개구리 합창이 과거 하수처리장 계획을 통해 일대에 판자촌이 있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단서가 될 수 있다고 느꼈다.

이 모든 사소하고 파편화된 감각들이야말로 도시를 바라볼 수 있는 가장 정직한 시작이었던 셈이다.

매 순간을 알아차리려는 시도는 어쩌면 순간이 주는 생생한 몰입을 방해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동시에 그저 흘러가 버릴 순간들이 도시 공간을 어떻게 구성하고 변화시키고 있는지 이해하는 나만의 관점이 되어주기도 한다.

내가 느끼는 감각을 실마리 삼아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질 때, 개인의 기억과 경험은 비로소 도시의 생태계를 직조하는 하나의 거대한 실타래로 확장된다. 감각을 통해 얻은 나의 질문들이 당장 명쾌한 답을 주지는 못할지라도, 이 질문들을 붙잡아두는 행위 자체가 ‘나’라는 실타래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주리라 믿는다. 그리고 언젠가 이 도시가 품은 수많은 사람들의 실타래와 맞닿아 있는 걸 이해하는 순간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해 본다.

*출처: 이-푸투안, 『공간과 장소』 (윤영호,김미선 공역), 사이, 2020

무아레 서점